▲ 박기영 공주시의원.

말라카의 역사
싱가포르를 출발하여 말레이시아 국경을 넘자 온통 팜나무들로 빼곡히 들어찬 농장들이 이어졌다. 가이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팜유는 전 세계 생산량의 90%에 이른다면서 팜유의 기능과 쓰임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에 귀 기울이면서도 나의 시선은 차창 밖의 풍경을 하나하나 꼼꼼히 훑어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싱가포르의 화려했던 풍경과는 사뭇 대조적인 붉게 녹이 슨 양철지붕과 슬레이트 건물들에서 마음이 편안하고 푸근해짐을 느끼며 말라카로 향했다.

▲ 50-100년된 건물들이 매장으로 변신하여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말라카(Malacca)는 1400년경 수마트라 추방자들이 세운 말라카왕국으로 말레이지아의 최대 항구이자 관광도시이다. 말라카 해협은 지난 15-6세기를 풍미했던 해상실크로드의 동방거점이자 19세기 서방세력들이 동·서양을 오가면서 반드시 지나쳤던 곳이기도 하다.

향료와 교역의 중심지 말라카는 이런 지리적 여건으로 1511년 포르투갈이 점령하여 130년을 통치하였고, 그다음으로 네덜란드와 영국 그리고 2차 대전 때 일본의 식민지까지 수백 년간 외세에 시달리고 수모를 당하는 비운의 근대사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서구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 식민통치를 받는 동안 시내 곳곳에는 시대와 나라마다 각기 다른 특징의 건축물과 대형 박물관에 다 채우지 못할 만큼의 유물 그리고 거리와 기념물에는 각각의 사연담은 이야기들을 남겨 놓았다.

역사의 아니러니 일까? 말레이시아는 현대에 이르러 경제난을 거듭한 덕분에 여러 나라의 식민통치를 겪으면서 세워졌던 건물과 역사적인 조형물 그리고 유적지등이 비교적 고스란히 잘 보존되었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인 사실과 잔존물들은 말라카를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 반전의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 크리스트 처치와 공관 그리고 빅토리아 분수대가 있는 네덜란드 광장 전경.

말라카의 관광
말라카는 거리 곳곳마다 기독교회, 힌두교사원, 이슬람사원 그리고 불교와 도교 사원이 남아있고 말레이계, 인도계, 중국계 등의 다민족이 공존하는 마치 종교와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도시다.

말라카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다는 네덜란드광장은 멀리에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건축물이 있다. 바로 크리스트 처치(Christ Church)인데 네덜란드가 통치하던 시기인 1753년에 건축된 교회다. 주변에는 통치시절 총독과 장관들의 공관으로 쓰였다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광장 중앙에는 1904년 빅토리아 여왕에게 헌납할 목적으로 지어진 분수와 시계탑이 서있는데 섬세하고 아름다운 경관으로 관광객들에게 멋진 포토 존을 제공하고 있다.

따가운 햇볕을 피해 네덜란드 광장 뒤편 언덕으로 오르니 지붕은 없고 벽체만 남아있는 자그마한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1521년 포르투갈 사람 두아르떼 코엘료가 건축한 세인트 폴 교회로 그리스도 포교의 거점지로 유명했으나 가톨릭을 박해하던 영국과 네덜란드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교회 바로 앞에는 동방에 가톨릭을 전파한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의 오른손목이 잘린 동상이 교회를 찾는 관광객들을 반겼고 안으로 들어서니 네덜란드 귀족들의 묘비만이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인트 폴 언덕위에 서면 멀리 말라카 해협이 눈에 들어온다. 시선을 거두니 바다와 맞닿은 해안선 안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주황색 기와의 주택들은 마치 지중해 연안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만나는 산티아고 요새에는 젊은이들이 기타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요새는 포르투갈이 네덜란드의 침공을 대비해 만들었지만 결국 네덜란드에 밀려났고 요새도 크게 손상되어 형체만 남아 있다.

요새 앞의 대포 2문이 당시의 위용을 과시하는 듯 했지만 폐허로 남은 요새와 대비되어 씁쓸한 역사의 한편을 보는듯하여 안타까웠다.

말라카의 또 다른 묘미는 거리 여행이다. 존커 스트리트나 히런 스트리트 등 골목길을 둘러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군데군데 이슬람 사원과 중국 사찰 그리고 힌두교 사원이 보이고 수십 년에서 100여년쯤 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매장으로 쓰이고 있는데 마치 공주시의 강남거리와 골목길을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승용차도 교행하기 쉽지 않을 정도의 골목길 양쪽으로 즐비한 가게에서는 별의별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기념품가게, 떡집, 시원한 음료를 파는 가게, 음식점등에는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일행이 말라카에 도착하여 맨 처음에 간곳은 말라카 리버 크루즈(Malacca River Cruise)다. 도심 속 강을 따라 배를 띄워 왕복 40여분을 유람하며 강 양쪽으로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지는 풍경들을 즐기는 관광코스다.

출발하자마자 일행들을 카메라와 휴대폰을 꺼내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시시각각으로 눈앞에 다가오는 풍광들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우뚝 솟은 현대 건축물이 보이는가하면 대포를 거치한 성곽이 나타나고 바로 이어 유럽풍의 벽화가 그려진 카페와 음식점들이 줄지어 눈에 들어온다.

▲ 세계 여러나라의 여행객들이 말라카 리버 크루즈를 즐기고 있다.

강변을 따라 화분에 담겨진 형형색색의 꽃들이며 찻집 야외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며 크루즈를 즐기는 관광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금강에 배를 띄워 제민천을 타고 거슬러 오르는 기분 좋은 상상 속에 빠져보기도 했다.

되짚어 내려오면서는 야간 조명으로 불 밝힌 이 멋진 경관을 사랑하는 사람과 밤늦도록 거니는 묘미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말라카를 떠나오면서 촉박한 일정 때문에 화려한 장식을 한 트라이 쇼를 타고 골목길을 누비지 못한 아쉬움이 가장 컸다.

▲ 또 하나의 관광상품이며 이동수단인 트라이쇼.

말라카와 공주
이번 연수에서 필자는 무령왕릉과 공산성일대를 포함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공주지역의 관광 진흥 정책을 말라카를 통하여 한수 배워보고자 하는데 의미를 두고 참여했다.

말라카에는 한해 약 1,000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현재의 우리 공주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도시의 규모와 앞에서 열거하지 못한 관광지등 인프라 면에서도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말라카를 돌아보며 공주와는 매우 다르면서도 곳곳에서 닮은 점을 보았다. 공주에는 오히려 그곳에는 없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또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류(韓流)의 열풍도 있다.

일정 내내 만나고 마주치는 현지인이나 여행객들로부터 느껴지는 한류의 열풍은 매우 뜨거웠다. 세인트 폴 교회 언덕에서 만난 동남아의 여성들에게서 K-POP의 열기를 감지했고 스스럼없이 한식당에 들어서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한식(韓食)의 마력을 보았다.

공주가 가지고 있는 지금 그대로에 고도(古都)의 이미지를 키우고 전통문화로 덧씌워 한류로 멋을 내고 맛깔스런 한식의 매력으로 담아낸다면 그들은 반드시 온다.

고도,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공주로 ···